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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

[로우루] 치료





"이건 뭐야?"
"과산화수소수."
"…음. 가산주소수."


알아들은 척 하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모르는 척한 로우가 루피의 몸에 감긴 붕대를 푼다.
아직 채 아물지 않은 상처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방금 루피가 물어봤던 액체에 솜을 적셔 상처를 소독한다.
따끔거리는지 움찔하지만 별다른 투정은 않는다.
여전히 침대 위에서 호기심으로 눈을 빛내며 주위를 둘러볼 뿐이다.


"이건?"
"말하면 아나?"


무심하게 대꾸하니 무시하지 말라며 발끈한다.
덕분에 상처를 소독하던 솜이 미끌어진다.
로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솜을 새로 집어 루피의 상처에 세게 꾸욱 눌러버린다.
그러자 루피가 크게 숨을 들이쉰다.


"가만히 있어."


조용히 경고하니 불만 가득한 얼굴로 입을 다문다.
소독을 끝내고 약까지 모두 바른 로우가 마지막으로 붕대를 집어든다.
루피에게 쓴 붕대만 벌써 몇 개째인지 모른다.
이 정도 상처인데도 용케 팔팔하다.


"이상하네. 원래 이 정도 상처는 금방 낫는데."
"지금 네 몸 상태로는 당연히 원래의 회복속도가 나오지 못해."
"역시 좀 무리했나?"


약간 가라앉은 눈으로 붕대를 감는 로우의 손을 좇는다.
능숙한 솜씨로 빠르게 움직이는 두 손.
그 손들이 상체를 한바퀴 감기 위해 막 루피의 등 뒤로 돌아간 순간, 루피가 로우의 팔을 덥석 잡는다.
덕분에 로우가 두 팔로 루피를 어정쩡하게 감싼 자세로 멈칫한다.
눈빛으로 영문을 물으니 루피가 다소 진지한 얼굴로 묻는다.


"많이 오래 걸려?"
"……."
"난 빨리 나아야돼. 이런데서 낭비할 시간 없어."


조금 전, 눈을 반짝이던 바보같은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또렷한 눈빛으로 날카롭게 꽂히는 시선이 주변 공기를 싸늘하게 만든다.
그런 루피를 잠자코 쳐다만 보던 로우가 아무 말 없이 다시 손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자 루피가 붙잡았던 손을 풀어준다.

마무리까지 끝마친 로우가 벗어두었던 모자를 챙겨들어 머리에 쓴다.
자리에서 일어서자 의자가 뒤로 밀리는 소리가 적막을 깬다.
몸을 완전히 일으킨 로우가 잠시 루피를 내려보다가 갑작스레 인상을 확 구긴다.
동시에 들고있던 검의 검집으로 루피의 상체 정중앙의 가장 큰 상처를 퍽 찌른다.
루피의 두 눈이 크게 떠지며 결국 숨을 집어삼키는 소리를 내고만다.


"이런 데?"
"윽, 트랑이 너…!"
"낭비?"
"아파…!!"
"그럼 몸관리를 제대로 하지 그랬어."


날이 선 목소리에 루피가 입을 다문다.
모자를 눌러쓴 로우가 이번에는 검집으로 루피의 어깨를 꾹 밀어버린다.
그 덕에 몸이 뒤로 젖혀진 루피가 얼른 뒤쪽으로 손을 뻗는다.
그러나 허공에 뜬 손바닥이 미처 침대에 닿기도 전에, 로우의 검이 목 한가운데를 파고든다.
분명히 날이 없는 검집인데도 이상하게 오싹한 느낌이 든다.

결국 완전히 침대에 누워버린 루피가 숨이 막혀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하지만 로우의 손에선 힘이 빠질 생각을 않는다.


"네가 얼마나 무책임하게 몸을 혹사시켰는지 전부 읊어주고 싶다만, 어차피 넌 전부 흘려들을테니 내 입만 고생이겠지."
"……."
"하지만 이 말은 제대로 새겨듣는 게 좋을거다."


모자의 그늘에 가려져 표정이 보이지 않지만, 단단히 화가 났다는 것쯤은 제아무리 루피라도 알 수 있다.
그 화가 고스란히 담긴 목소리가 한 마디 한 마디에 날을 세우고서 루피의 귀로 꽂힌다.


"이 몸은 한번 끝장날뻔 했고, 그걸 살려놓은 건 나야. 그러니까 나 또한 이 몸에 참견할 권리가 있다."
"……."
"만일 한번만 더 걸레짝으로 만들었다간, 그땐……."


점점 격앙되던 목소리가 한순간에 뚝 끊긴다.
동시에 루피의 숨통을 죄던 검집이 떨어져나간다.
그러기가 무섭게 루피는 부족한 산소를 크게 들이쉬며 쿨럭거린다.
붕대에 감긴 손이 마찬가지로 붕대투성이인 목을 감싸쥔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로우가 홱 뒤로 돌아선다.


"다신 움직이지 못하게 팔다리를 전부 잘라놓을 거다."


다시 이어진 목소리는 원래의 침착함을 되찾은 뒤다.

그대로 밖으로 나가려는데,
뒤에서 붕대투성이의 손이 쭉 뻗어나와 로우의 옷자락을 붙잡는다.
돌아보니 루피가 언제나처럼 웃고있다.
뭐야.
미간을 구기며 인상을 써보지만 루피는 전혀 개의치않는다.


"그 말은, 그 때도 날 도와줄거란 거지?"
"……."


천진난만한 물음에 로우는 결국 저도 입술 끝을 올리고만다.
교차하는 두 시선이 서로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한다.
일자로 다물린 로우의 입술이 달싹인다.


"그래. 난 이제 그 몸을 포기할 생각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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