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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우루] 겨울비 정류장 02






  어디선가 울리는 낯선 소리에 로우는 펜을 움직이던 손을 멈추었다.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일정한 주기로 울리는 소음의 발원지는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로우는 옷걸이로 다가가 새빨간 패딩 앞에 섰다. 무채색의 방 안에서 유일하게 톡 튀는 선명한 원색. 패딩의 출처를 되짚어본 뒤 어지간히도 진동이 울려대는 주머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끄집어낸 핸드폰 화면에는 에이스라는 세 글자가 떠 있었다.

 

  조금 머뭇거리던 로우는 일전에 도플라밍고가 자신의 앞에서 전화를 받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뭔가를 손가락으로 그었던 것 같은데….

  곤란한 표정으로 핸드폰 위를 방황하던 손가락이 초록색 수화기가 그려진 화면부를 옆으로 문질렀다. 다행스럽게도 정답인 모양이었다. 핸드폰 너머에서 곧바로 시끄러운 말소리가 와다다 쏟아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 받았다. 여보세요?!

  -받았다고? 내놔봐. , 너 누구야?

  -에이스, 다짜고짜 반말을 하면 안 되지. 여보세요? 혹시 그 핸드폰 주인 되세요?

  -장난하냐? 저건 루피 폰이잖아!!

  -아 참, 그랬지.

 

 

 

  목소리들이 어찌나 큰지, 아직 핸드폰을 귀에 대지도 않았음에도 방 안을 쩌렁쩌렁 울려댔다. 혹여나 밖에서 누가 들을까 걱정이 됐으나 불행히도 로우의 기계감각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따라서 처음 만져보는 핸드폰의 통화 소리를 줄이는 방법을 알 리가 만무했다.

 

  귀가 조금 아플 것 같았지만 어찌됐든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댔다.

 

 

 

  “여보세요.”

  -!!!!! 너 뭐하는 자식이야!!!

  -에이스!!

 

 

 

  , 귀 따가워.

  급히 핸드폰을 귀에서 멀리 떨어뜨려놓았다. 핸드폰 너머에서는 여전히 통화권을 가지고 다투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한참을 기다리니 간신히 한 사람에게로 통화권이 고정되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누구야?

  “…….”

 

 

 

  이게 대체 무슨 대화지. 잠시 혼란이 왔다. 전화를 건 대상은 저쪽이 아니던가? 그러나 곧 자신이 든 핸드폰이 다른 이의 것임을 깨달은 로우는 금방 상황을 파악했다. 아까 저쪽에서 루피라는 이름을 말했었지. 그건 지금 로우의 앞에 걸려있는 빨간 패딩의 본래 주인의 이름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통화하는 목소리도 왠지 익숙했다.

 

 

 

  -저기, 그 핸드폰 내 거야.

  “알아. , 루피였지. ○○고 1학년 5.”

  -……? 너 나 알아?

 

 

 

  설마 잊어버린 건가. 로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비록 3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고는 해도 어떻게 본인의 물건을 빌려준 대상을 까먹을 수가 있는 거지. 심지어 한두 푼 하는 자잘한 필기구 따위도 아니었다. 꽤 고가의 옷가지와 핸드폰인데, 어떻게 이들 전부를 잊어버릴 수 있는 걸까. 로우의 지식 수준에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연락을 할 수 있었다면 진작 했어야 맞는 게 아니던가.

 

 

 

  -여보세요? 끊겼나?

  -?! 이런 개념 없는 자식이!!!! 감히 누구 삥을 뜯어놓고 지금 잠수를 타?!

  “이걸 주고 간 건 그쪽인데.”

  -어련하시겠어. , 너 이름 뭐야. 당장 찾아서 족쳐버릴-

  “로우.”

 

 

 

  짤막한 대답에 이번에는 저쪽에서 응답이 없었다. 생각보다 쉽게 이름을 댄 것이 오히려 당황스러운 것 같았다.

 

 

 

  -, 그래, 로우. 너 루피랑 같은 학교냐? 몇 학년이야?

  “……그 녀석이 알고 있을 텐데.”

  -루피, 이 자식 로우라는데. 알아?

  -로우? 으음…….

 

 

 

  루피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통화 상대는 총 3명인 것 같은데, 어째서 이 셋의 목소리가 전부 똑똑히 들리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대체 어떤 모습으로 통화를 하고 있는 걸까.

 

  로우 나름대로 상상되는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을 때. 드디어 핸드폰 너머에서 !’하며 박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 그거구나! , 추워 보이는 녀석!

  “…….”

 

 

 

  그래, 옷차림이 좀 얇긴 했지.

 

 

 

  -이야, 반갑다!

  “……?”

  -어휴, 이 멍청이는 뭐래. 그래서 얘가 누군데?

  -전에 만났어. 친구! 맞고 다녀.

 

 

 

  눈 깜짝할 사이에 허위 사실을 2가지나 만들어냈다. 그것도 매우 당당하게. 언제부터 두 사람이 친구 관계가 되었으며, 로우가 허구한 날 맞고만 다니는 약골이 되었단 말인가.

  로우는 끙, 하며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고 보니 그 때도 꽤 제멋대로 구는 경향이 있는 녀석이었다.

 

  잘못된 사실이라고 짚어줄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어차피 깊게 엮일 일도 없는 상대들인데, 구차하게 요목조목 따지고 들 필요가 없었다. 옷도 시간이 나질 않아 그 동안 돌려주질 못했던 거고. 마침 연락이 닿았으니, 그냥 잠시 만날 약속을 잡고 물건만 돌려주면 될 터였다.

 

 

 

  “시간이 없어서 옷이랑 핸드폰은 돌려주지 못했어. 괜찮다면 지금-”

  -? 무슨 옷? 루피, 너 옷도 뺏겼냐?

 

 

 

  빼앗은 게 아니라고 분명히 말을 한 것 같은데. 정말이지 쌍으로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였다.

 

 

 

  -, 맞아. 패딩도 줬지 참. 으히히히, 까먹고 있었다.

  -야 이…!!

 

 

 

  !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로우는 움찔했다. 무언가가 구타당하는 소리. 비록 로우가 늘 듣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것이었지만, 그래도 그냥 흘려 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그런 자신의 처지에 웃음이 나왔다. 확실히 요 근래 많이 맞기는 한 모양이었다. 어쩌면 루피란 녀석이 딱히 틀린 말을 한 게 아닐지도.

 

 

 

  “지금 돌려줄 수 있어. 마침 그 남자도 없…….

  -?

  “아니, 아무것도.”

 

 

 

  쓸데없는 사실을 굳이 말할 필요는 없지. 대체 언제부터 자신이 이렇게 주변의 눈치를 살피게 되었던가. 약간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 그럼 지금 만나자! 그 때 그 정류장에서 만나?

  “좋을 대로.”

  -거기 좀 먼데.

 

 

 

  그럼 애초에 정류장에서 만나자는 얘길 하질 말든가. 순간 욱하고 올라온 말을 아무 생각 없이 뱉을 뻔했다. 언제나 평정심에는 자신이 있는 로우였기에 방금의 충동은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마이페이스가 강한 상대여서 그런가.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고. 자꾸만 휘말리게 된다.

 

 

 

  “그러면, 어디.”

  -너 집이 어디야?

  “…….”

 

 

 

  대답해줄 수 없었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자신의 집을 가르쳐준 적이 없었고, 이번이라고 예외로 칠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아무래도 집안의 환경 탓이 크긴 하다만, 어찌됐든 알아봤자 저쪽도 좋을 것이 없었다. 결국 고민하던 로우는 다시 되물었다.

 

 

 

  “. 너희 집은 어디지?”

  -우리 집? , 그러니깐….

 

 

 

  제 집의 위치를 술술 풀어놓는다. 자신의 집과 루피의 집 간의 거리를 재보던 로우는 금방 계산을 끝마쳤다. 생각 외로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다.

 

  중간 지점에 속하는 정류장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그러자 잠시 으응….’하며 앓는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그게 어디야?

  “…….”

 

 

 

  결국 로우 쪽에서 루피의 동네까지 가주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까짓거 옷까지 빌려줬는데 그쯤이야 못 해줄 것 없지. 그리고 루피를 만나 옷과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분명 건네주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어때? 맛있지! 에이스가 요리는 진짜 잘해!”

  “요리’? 말이 좀 거슬린다?”

  “아하하. 많이 먹어, 루피 친구. 그러니까, …. 졸링턴?”

  “로우입니다.”

 

 

 

  졸링턴은 대체 뭐야. 아니 그보다, 왜 내가 이 녀석 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거지…?

 

 

 

  “아아, 그래. 많이 먹어, 롤링턴.”

  “…….”

 

 

 

  로우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지 못한 건지, ‘사보라는 이름을 가진 루피의 형은 신나게 수저를 들었다. 로우는 다시 한 번 자신에게 되물었다. 대체 난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


딱히 이어 쓰려는 글은 아니지만,

그냥 갑자기 로우루가 땡겨서...ㅎㅅㅎ

충동적인 글에 퇴고따우 하지 않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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