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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

[로우루] 재회, 그 밤





눈을 감고 얕은 잠에 빠져있던 로우가 눈을 뜬다.
앞쪽에서 느껴지는 기척을 느낀 탓이다.
어둠에 적응된 눈이 차츰 시야를 확보해나가자 익숙한 인영이 보인다.
둥그스름한 곡선을 그리는 마른 몸.
자나깨나 몸에 늘 지니고 다니는 밀짚모자.
루피다.

쭈그리고 앉아 턱을 괴고서 로우를 빤히 들여다보던 루피가 묻는다.


"왜 여기서 자?"


한참을 기다려도 로우가 들어오지 않길래 나와보니 갑판 한쪽에서 불편한 자세로 자고 있었다.
그것도 검을 품에 안고서.
저러고 자면 아침에 온 몸이 뻐근하지 않나.
의아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앞에 앉아 구경 좀 했더니 로우가 잠에서 깬 거다.


"니 자리도 있어."


루피가 선실을 가리키며 씩 웃는다.
손가락 끝을 따라 눈을 움직이던 로우가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아니, 여기가 더 편해."
"정말?"
"그래."
"너 되게 이상하다."
"……."


남이 그랬다면 당장에 몸을 두동강 냈겠지만,
루피가 하는 말은 아무 악의가 없다는 걸 안다.
그렇기에 묵묵히 입을 다문다.
이쯤되면 그냥 혼자 돌아갈 줄 알았더니 루피가 아예 자리에 털썩 앉아버린다.
어쩌자는 거지.


"밖에 나왔더니 잠이 안 와."
"……."
"놀아주라. 트랑이 너도 잠이 안 오지?"


잠이 오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애초에 로우는 잠이 많은 타입도 아니고, 평소에도 활동에 지장이 없을 정도만 자 두는 정도니까.
하지만 놀아달라니.
로우에게 있어 그것만큼 곤란한 부탁은 또 없다.

뭘 어째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루피가 불쑥 얼굴을 로우의 코앞으로 들이민다.
로우는 반사적으로 기대고 있던 벽에 등을 밀착시킨다.


"너-"


아리송한 표정을 하고서 빤히 쳐다보는 루피가 말꼬리를 늘인다.


"전에는 좀 더, 잘 웃지 않았었나?"
"……."
"우리랑 있으면 재미없어?"
"…재미라니. 밀짚모자여, 지금 우리 상황을 알기나 하는-"
"난 너랑 다시 만나서 무지 좋은데."


무심코 던져진 한마디에 로우는 말문이 막힌다.
별 것 아닌 말인데도 대답할 수가 없다.
입을 도로 다무니 루피가 다시 몸을 뺀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다.
로우도 루피를 따라 눈을 움직인다.
두 사람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루피의 상체에 커다랗게 남은 X자의 흉터다.


"그 날, 넌 분명 죽을 뻔했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히 그려진다.
도착해보니 이미 상황은 종료되었고, 흰수염과 에이스는 목숨을 잃은 뒤였다.
루피의 몸은 너덜너덜해진 데다가 정신적으로는 완전히 붕괴된 상태였다.
수술대에 올려놓은 뒤에도 루피는 죽어가는 목소리로 끊임없이 에이스를 찾아 헤맸다.


[ 에이스……. 에이스……! ]


이미 정신을 잃었음에도, 원통함에 감지 못하던 두 눈을 로우는 조심스럽게 감겨주었다.
아무 데미지도 입지 않은 로우였지만,
이상하게 심장 부근이 조금 아렸던 기억이 난다.


"응, 맞아. 근데 트랑이 니가 살려줬어."
"그래, 그랬지."


반짝이며 바라보는 루피의 두 눈이 굳은 신뢰로 가득 차있다.
그게 동료들이 늘 보여주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인지라, 로우는 시선을 피해버린다.


"그냥, 너 같이 재밌는 녀석이 그렇게 일찍 죽어버리는 건 아까웠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어."
"어쨌든 살려준 건 맞잖아?"
"……."


들뜬 목소리의 루피에게 쉽게 눈을 마주칠 수가 없다.
그냥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린 채 대답을 하지 않으니
루피가 또 다시 불쑥 로우의 코앞으로 다가온다.


"널 다시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 고마워."


밝게 웃는 루피를 보며 로우는 한참 전에 바싹 말라버린 침을 힘겹게 삼킨다.
두근, 두근.
심장이 그 날의 기억을 되새김질한다.
결국 로우는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만다.


"뭐야, 자려고?"
"……."
"재미없게!"


제발 그냥 좀 가라.
애써 반응하지 않으며 버티는데, 어느 순간 주위가 고요해진다.
기척을 읽을 수가 없어 살짝 눈을 떠볼까 하는데,


"잘 자, 트랑아."


귓가에 루피의 입술이 아슬아슬하게 닿았다 떨어진다.
그제야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선실 문이 닫히자마자 로우는 눈을 번쩍 뜬다.
방금 뭐였지..?
당황하며 손을 들어 얼굴을 묻은 로우가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나 또한 너를 만나 기쁘다.
잘 자라, 밀짚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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